경계에 선 자를 바라보는 경계에 선 자

20세기 초 독일사회 각계각층의 인간군상을 찍은 아구스트 잔더 August Sander (1876-1964)의 사진연작 <20세기 사람들 People of the 20th Century>[1]이 여전히 현대사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며 논의되는 것은 그것이 단지 잘 찍은 인물사진이어서 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치밀하게 계획되고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인물사진만으로 당대 독일의 사회구조를 드러내주기 때문일 것이다. 잔더 이후 우리는 인물사진에서 사진 속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 보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가 입은 옷이나 속한 배경 등 그의 외면까지도 눈 여겨 보게 되었고, 단지 한 장의 사진만을 보지 않고 그 사진을 포함한 전체 연작을 통해 그들이 속한 사회를 보게 되었다. 20여 년 간 인물사진을 찍어 온 한국의 대표적 사진작가 오형근(1963- )의 사진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잔더가 여러 계층의 인물들을 통해 당시 독일 사회 전체의 횡단면을 그리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형근은 개인적 관심에 따라 각 연작마다 하나의 인물 군(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그 결과, 대한민국 사회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태원이야기>, <광주이야기>, <아줌마>, <소녀연기>, <화장불안> 등 그간 오형근의 인물사진에서 주목해 온 인물 군은 작가가 오랫동안 살아 온 이태원이라는 특수한 지역의 사람들[2], 영화촬영 현장에서 그 지역 실제 거주민과 한 화면에 공존하는 무명의 배우들[3], 대한민국에서 제3의 성(性)으로 불리며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 중년의 기혼 여성인 아줌마, 교복을 입은 여고생,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화장한 소녀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구성원이면서도 중심에 있기보다는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소수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호기심 어린 관찰자의 것이되 묘하게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오형근의 사진은 언제나 상이한 둘 사이의 경계에 서 있으며 ‘이중성’은 그의 작업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단어다. 사진과 영화를 동시에 전공한 뒤 순수사진과 영화 관련 사진작업을 병행해 온 이력에서부터 실재(다큐멘터리)와 비실재(연출)를 오가는 작업방식, 그리고 그간 주목해 온 인물 군의 사회적 위치와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는 경계에 선 자의 모호함이 있다.

특히 사진의 소재로써 여성을 대하는 그의 이중적 시선은 흥미롭다. 그는 분명 대한민국 대다수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 – 아줌마와 소녀 – 을 바라보고 있지만,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의 시선은 ‘그들’과 공감하기보다는 ‘그녀들’과 교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사회가 만들어 낸 강하고 억척스러운 아줌마라는 특유의 집단을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 그녀들의 애환과 유머를 놓치지 않고, 동년의 남자 아이들과 달리 일찍이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전형화된 이미지를 강요 받는 소녀를 소재로 삼지만 그녀들의 정서적 흔들림과 불안정한 정체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여성을 대상으로서 바라보면서도 자신과 결코 이질적이지 않은 공감의 영역을 확보한 채 그들에게 다가선다. 이러한 모호함으로부터 비롯된 특유의 긴장감이 오형근의 인물사진이 가진 가장 큰 힘일 것이다.

오형근은 최근 몇 년간 십대 소녀에 천착하고 있다. 작업노트를 영어 단어 ‘ambivalent’의 사전적 정의로부터 시작하고 있듯 그에게 소녀가 인물사진의 소재로서 가치 있는 이유는 그녀들이 아이와 여성의 경계에 선 모호하고 불안정한 존재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들은 ‘내부적’으로 아직 가치관이 채 형성되지 않은 ‘아이’면서 ‘외부적’으로는 일찍이 ‘여성’으로서의 시선을 부여 받는다. 이 상충하는 두 지점 사이에서 그녀들의 자아는 허공에 뜨고 정체성은 확립되지 못한다. 오형근은 이러한 우리 사회 십대 소녀의 모호한 존재적 위치에서 비롯된 불안을 사진에 포착하고자 노력해 왔다.

먼저 <소녀연기>(2003)는 교복을 입은 채 비슷한 표정과 포즈를 한 소녀들을 유사한 포맷으로 찍은 흑백사진연작이다. 이 사진들은 인물과 배경의 명암대비가 극단적인 그의 이전 사진들과 달리 전체적으로 중간 계조의 미묘한 차이가 풍부한 흑백사진으로 그러한 특징은 사진 속 소녀들의 모호함과 불안을 살려주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작가가 사진에 담고자 한 그녀들의 ‘모호한 시기의 정서적 흔들림’은 개별 사진에서는 읽혀지나 전체 연작으로 볼 때 소재, 형식과 함께 그마저 반복되어 일정한 유형으로 보이게 된다. 이처럼 그가 ‘소녀도감’이라는 표현을 쓰며 소녀를 일종의 유형학적 사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 사진들로부터 우리 사회가 십대 소녀에게 부여하는 정형화된 모습과 그들의 사회적 위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 매체는 연예인을 통해 전형적인 소녀의 표정과 포즈를 은연중 강요하고 가치관이 채 성립되지 않은 소녀들은 그 모습을 쫓아 자연스레 습득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에서 십대를 보내고 있는 소녀들에게 개성이란 사라지고 그 겉모습은 도감을 만들어도 무리가 없을 객관적 산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눈에 띄는 유형학적 요소 뒤에 숨겨진 비가시적인 사회구조를 말하는 본래 유형학 사진의 특징처럼 오형근의 소녀사진 역시 유사한 표정과 포즈 너머 그녀들이 소녀이면서 소녀를 연기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오형근의 소녀사진이 형식상의 변화와 내용상의 심화를 거쳐 나온 것이 최근작 <화장불안>[4](2007-8) 연작이다. <소녀들의 화장법>이라는 제목으로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십대 소녀의 화장한 얼굴과 그녀들의 머리모양, 옷 매무새, 몸짓, 태도를 드러내는 전신과 신체 일부분을 일정한 형식으로 찍은 대형 컬러사진연작이다.[5] 흑백으로 일관하던 작가의 이전 사진과 달리 처음으로 컬러가 시도되었으며 고성능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고 초대형 크기(최대 약 200x260cm)로 인화한 덕분에 적나라한 소녀들의 얼굴과 몸의 디테일이 관객을 압도한다.

사진 속 소녀들은 하나같이 아이인 듯 하면서도 동시에 성인인 듯 나이를 가늠할 수 없고, 컬러렌즈를 착용한 눈에서는 알 수 없는 흔들림이 감지되며, 밀착되지 않고 들뜬 피부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불안이 느껴진다. 이는 마치 아직 수확할 때가 안된 과일을 인위적으로 익혀 겉은 익었지만 속은 떫은 ‘성숙을 가장한 미성숙’의 징후처럼 보인다. 소녀들은 컬러렌즈와 색조화장뿐 아니라 염색머리, 붙임머리(짧은 머리에 인조 모발을 붙여 길게 한 머리 모양), 매니큐어, 페디큐어, 문신 등 성숙한 외양을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여드름, 화장이 들뜬 피부, 볼의 홍조, 렌즈로 인해 충혈된 눈, 몸의 흉터나 상처, 옷과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 양말 등 미성숙의 증표를 완전히 가리지 못한다. 이렇게 그들은 모호한 존재로 남아 있다. 한편 사진 속 소녀를 소녀로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화장이나 기타 다른 외양적 요소 때문만은 아니다. 일부 소녀들에게는 보통 사람의 얼굴에 드러나는 살아온 세월이나 성격과 같은 흔적이 전혀 없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으며 놀라울 정도로 무표정한 중성적 시선만이 머물 뿐이다. 이는 정체성의 부재를 내포하는 바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통해 이 사회의 청소년이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음을 경고하고자 한다. 그것은 개성이 없는 일률적인 화장술을 넘어서 자신의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거나 어쩌면 내면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우리 사회 청소년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녀들 대부분은 손을 앞으로 포개 모으거나 가랑이 사이에 넣어 성기 부분을 가리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주문한 것이 아닌 1시간 반 여의 촬영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나온 그녀들의 평소 자세다. 어쩌면 소녀들은 이미 자신들이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또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지 모른다. 작가는 그러한 소녀들의 자세나 태도에서 성적 긴장감과 불안의 징후를 포착하였고, 일부 사진은 앵글에서 직접적으로 그러한 부분을 강조하여 유사한 포맷으로 반복하고 있다. 작가는 소녀를 일종의 상품으로 대상화하는 이러한 사회적 시선을 강조하기 위해 소녀들을 스튜디오로 들여와 장식물을 올려놓듯 좌대 위에 융단 천을 깔고 색깔 있는 배경 앞에 앉혀놓았다. 단 배경색을 보통의 유형학 사진처럼 중성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각 소녀의 느낌에 따라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단순한 반복이 아닌 미묘한 감각적 차이를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오형근의 인물사진이 단순히 독일식 유형학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변형된 유형학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아줌마와 두 소녀 시리즈는 한국 사회에서 특정 지위를 부여 받은 여성 군을 다룬다는 점 외에 사진 별 인물들간의 미세한 차이를 강조하는 변형된 유형학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줌마라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종(種)을 보여주고자 그들을 유사한 포맷으로 찍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각 인물의 개성과 표정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개인을 사라지게 하고 단체를 두드러지게 하는 졸업앨범을 모티브로 “여고생이라는 인물 군 전체의 아우라를 담아내고자” 한 <소녀연기>에서도 그는 그녀들의 미묘한 감수성을 부각시키고자 단순한 반복이 아닌 연작의 형식을 추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화장불안>에 이르러서는 형태적으로 토마스 루프[6]와 같은 기존의 유형학적 인물사진에 보다 근접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의도적으로 변형시켜 차별화하고 있다. 루프가 최대한 인물의 감정과 개성을 제거하고 일률적인 형식으로 인물을 찍었다면, 오형근은 전체 연작 안에서 사진들 간의 유사한 형식을 유지하되 각 소녀들의 불안과 흔들림을 포착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데 있어 자신의 선입견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그는 전체 연작 안에서 포맷을 다양화하고[7] 고화질 대형사진의 핍진(逼眞)성으로 각 소녀와 마주하는 느낌을 강조했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에 따라 인물마다 배경색을 달리 하거나 촬영 후 전혀 다른 두 사진을 이면화(diptych)로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이는 특정한 인물 군을 하나의 사진연작 안에서 다루면서도 사람을 여타 다른 유형학의 소재처럼 객관화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오형근의 인물사진은 이중적이고 모호하다. 한 가지 소재에 대해 일정하게 유지하는 반복적 형식과 그 속에 잠재된 주제의식은 분명 유형학의 특징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각 인물의 구체성과 그에 대한 자신의 주관은 거두지 않고 있다. 이는 전체 연작을 통해 사진 속 인물 군을 둘러싼 우리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개별 사진 안에서 그들간의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이중적 욕망에서 기인한다. 오형근은 작업 전반을 통해서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영역의 경계에 선 중간자의 면모를 유지해왔다. 그것은 그가 찍은 소녀들처럼 모호함과 불안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확실하고 안정된 것이 긴장과 자극을 줄 수 없고 현대미술의 본질적인 속성이 긴장과 자극이라면, 오형근의 사진이 계속하여 지켜가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이중성일 것이다.

신혜영

[1] 잔더의 <20세기 사람들>은 1924년경 농민, 장인, 여성, 전문직종, 예술가, 대도시, 최후의 사람들(노숙자, 퇴역군인 등)이라는 7개의 섹션으로 분류하고, 12장씩 45개의 포트폴리오로 구성한 백과사전식 인물사진연작으로 이 중 60장만을 선별하여 1929년 첫 작품집 <시대의 얼굴Face of Our Time>이 출판되었다.

[2] 이태원은 한국 전쟁 이후 주한미군의 주요 위락지구로 번창하여 현재는 외국인과 내국인 모두가 찾는 쇼핑과 유흥의 장소로서 외국문화가 한국식으로 변형된 형태의 식당, 술집, 유흥업소 등이 밀집되어 있다. 작가는 1997년 당시 배우, 가수, 웨이터, 게이, 디제이 등 이태원에 거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그들의 생활환경을 배경으로 찍었다.

[3] <광주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사진연작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꽃잎>(1996)의 포스터와 스틸 컷을 담당한 작가가 당시 영화촬영현장에서 무명 배우와 광주 시민이 한 데 얽힌 모습을 의도적으로 한 장의 사진에 담아 실재(촬영현장)와 비실재(영화)를 혼재하게 한 작품이다.

[4] 주로 화장한 얼굴에 초점을 맞추어 2008년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 제목이 <소녀들의 화장법>이었다면, 대상과 형식 면에서 보다 범위가 확대된 이 연작의 최종적인 제목이 <화장불안>이다.

[5] 서울 시내 여러 지역에서 섭외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500여 명의 십대 소녀 중 촬영을 수락한 138명을 모델로 한 이 사진연작은 작품제목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 화장법과 패션 스타일이 드러나는 일종의 사회적 보고서의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분류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업으로서 그 형식과 주제를 파악하는 편이 작가의 의도에 보다 적합하다.

[6] 독일의 대표적 유형학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인 토마스 루프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완전히 무표정하고 중립적인 모습을 요구하고 동일한 포맷으로 찍은 인물사진 <포트레이트>(1986)으로 잘 알려져 있다.

[7] 스튜디오의 좌대에 앉아 증명사진, 전신, 하반신 세 가지의 일정한 포맷으로 찍은 <소녀들의 화장법>으로부터 범위를 확대하여, 앉지 않고 서있거나 스튜디오가 아닌 실생활의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을 찍는 등 포맷을 다양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