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근과의  인터뷰  – 김선정
 
 

       오형근과는 1993년, 내가 처음으로 기획한 사진 그룹전을 같이 준비하면서 작가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후부터 1995년 그룹전 ≪싹Saeck≫과 1998년 아트선재센터 개관 이듬해에 개최된 개인전 ≪아줌마Ajumma≫에서 본격적으로 작가와 큐레이터로 만나 작업을 함께 했다. 이 인터뷰는 2012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중간인

 

 

김선정: 군인 작업은 기존에 선보인 시리즈와는 분류방식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초기 작업에는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아줌마> 작업부터 초상에 집중했어요. 또한 <아줌마> 이후에 <소녀연기Girl’s Act>, <화장소녀Cosmetic Girls>의 세 시리즈는 여성들에 대한 작업이고, 각기 다른 연령대의 여성들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듯 보여요. 오형근: 91년부터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96년까지 <미국인 그들Americans Them>, <이태원이야기Itaewon Story>, <광주이야기Gwangju Story> 등을 작업했는데, 그때까지 스스로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97년에 시작한 <아줌마> 작업부터 다큐멘터리 인물 작가에서 초상사진 작가로 넘어갔다고 생각해요. 이 점은 다큐멘터리성을 버렸다는 게 아니라, 이전 작업은 사건도 있고 내러티브도 있었다면 <아줌마> 작업을 하면서부터는 초상사진으로 집약된 것이죠. ‘결국은 초상이다. 얼굴을 통해서 훨씬 더 미니멀하게 다큐멘터리를 얘기할 수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하튼 이 시기가 제 작업의 전환점이었고 이후에 <아줌마>부터 <소녀연기>, <화장소녀>까지 근 10년 동안 초상 작업으로 이어졌어요. 근데 공교롭게도 대상이 모두 여성이었죠. 하지만 처음부터 ‘여성 3부작’으로 순차적으로 기획한 건 아니에요. 그 사이에는 ‘아저씨’ 작업도 있고 ‘꽃미남’ 작업도 있었는데 발표를 안 했을 뿐이지… 그냥 한국 여성들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통해서 우리사회가 지닌 편견과 선입관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군인을 대상으로 한 이번 작업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지난 10년 동안 미니멀한 ‘개인의 초상’에 집착해 다큐멘터리를 풀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게 지겨워졌어요. 이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하든지… 아니면, 다시 본격적인 다큐멘터리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 즈음에 군중들이 모이는 정치적인 행사가 많았는데, 문득 한국 사회의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우리성’에 대한 의문도 많이 들었죠. 그리곤 ‘집단의 초상’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한 장의 사진 안에 수십 명의 우리가 들어가는… 하지만 한국사회의 모든 ‘우리’들을 찍을 순 없잖아요. 과연 ‘우리’라는 말이 가장 상징적으로 집약되어 있는 집단이 뭘까 고민했죠. 그런데 뜬금없이 ‘군대’가 떠 오르는 거에요. 사실 이전까지 작업해 온 인물군들은 사회적인 선입관이나 편견 혹은 공통된 욕망이 보여지는 그룹들이었는데, 군은 그런 면에선 거리가 있는 집단이에요. 더구나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의무로 모여 진 집단이고 섣불리 건드리기엔 조심스러운 면도 있고. 하지만 왠지 군이 한국 사회의 ‘우리’성에 대한 근원지처럼 느껴졌고, 이전까지 줄기차게 다뤄온 대상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남성들로 이루어진 군 작업을 하기로 맘을 먹었지요. 이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군 관계자들과 접촉도 해보고 군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탁을 해 봤지만 촬영 허가를 받을 수가 없었어요. 아시다시피 군은 가장 폐쇄적이고 노출을 꺼려하는 집단이기도 하잖아요. 일년 정도 애쓰다가 결국은 포기했죠. 그런데 2009년에 국방부에서 6.25 60주년 기념으로 자신들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저를 포함해서 경치, 정물, 다큐멘터리 등… 여러 사진 분야 작가들이 총 10명 정도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내 경우는 인물사진으로 진행을 하게 된 거죠. 여하튼 난 흔쾌히 그 제안을 수용했고 이후에 국방부 버스를 타고 장소 섭외, 인물 선택 등에 관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석 달 동안 작업을 했어요. 공식적인 작업이 모두 끝난 후에 일 년 정도 촬영을 요청했는데 운 좋게 그게 수용되어서 지금의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죠. 흥미로운 건 초반에 집단의 초상으로서의 ‘우리’라는 개념은 사라졌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 사이에 내 눈에 비친 군인들이 ‘우리’가 아니라 ‘그들’로 느껴졌거든요. 

군인작업이 ‘우리’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며 시작되었다고 했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소녀연기>에서 소녀들을 앨범처럼 동그란 프레임에 넣은 작업에도 이러한 ‘우리’의 형태를 드러내는 시도였던 것 같아요. <소녀연기>와 <중간인>의 작업의도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Page 139, Girl’s Act) 

<소녀연기>는 ‘내가 속한 우리’가 아니었어요. 내가 본 ‘우리’지. 그 집단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우리’는 아니었으니까… 결국은 내가 ‘그들’을 구성한 거죠.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작업한 인물군들 중에는 어떤 그룹도 ‘우리’라는 대상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일례로 ‘화장소녀’도 내가 바라본 ‘화장소녀, 그들’이었지 그 아이들을 ‘우리’라고 구성한 적은 없죠. 모두가 내가 바라보고 만들어낸 ‘그들’일 뿐이에요. 난 그들의 갈등 속에서 한번도 내부인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그들을 ‘우리’라는 개념으로 묶지 않은 건 <소녀연기>나 <화장소녀>를 남성작가의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인가요? 말하자면,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 건가요? 

작년에 ≪불안초상≫이란 전시를 하면서 작업 노트 첫 머리를 이렇게 시작했어요. ‘나는 태생적으로 타인의 불안을 바라보는데 익숙하다.’ 라고요. 나는 낸 골딘Nan Goldin처럼 내부자적인 시선으로 찍은 적이 없어요. 차라리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처럼 외부자적인 시선으로 작업할 수는 있어도… 아줌마도 화장소녀도 다 ‘그들’이에요. <중간인>도 마찬가지로 군인이라는 인물군을 철저하게 외부자적인 시점에서 ‘그들’로 바라보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첫 번째 작업인 <미국인, 그들>이란 제목도 당시 내가 외부인(이방인)outsider의 시선으로 미국인들을 봤다고 여긴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이태원도 광주도 아줌마도 다 그랬죠. <중간인>도 현재까지 나온 결과물을 보면 ‘우리’로 보이진 않아요. ‘군인, 그들’로 보였어요. 

군인들을 찍은 이번 시리즈의 제목을 <중간인Middlemen>이라고 정한 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중간 예술’과 연관이 있나요? 

나는 사진이 완전한 예술도 매체도 아니라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사진의 위치를 정의하자면 예술과 매체 사이에 있다고 할까? 그 불완전성이요. 그래서 항상 그 ‘중간성’에 대한 흥미가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이번 군인 작업을 부르디외와 연관해서 이름 지은 건 아니지만, <아줌마>작업 이후부터는 중간적인 불안에 관심에 갖게 되었고 또 내가 작업한 대부분의 인물군이 ‘중간인’들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르디외의 ‘중간 예술’론에 관심이 많았지요. 예를 들면, 소녀는 여성과 아이의 중간에 있고 아줌마도 사회인과 일상인 사이의 중간에 있잖아요. 심지어 나는 내 인생도 중간적이라는데 불만이에요. 예술라기에는 너무 사회적이고 일반인이라고 하기에는 사회성이 부족했죠. 심지가 약해서인지 항상 중용이 아닌 ‘중간’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그게 내 콤플렉스에요. 균형을 잡은 중용과 같은 게 아니라 어정쩡해서 중간인으로 살아온 거죠. 사진작업에도 나는 극단적인 갈등이나 완벽히 소외된 지점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예를들어, 노숙자나 탑골공원에 외로운 노인네들처럼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명백한 비극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요. 내가 관심을 두는 건, 어정쩡한 중간에서 모호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군인들이 그런 집단이었어요. 지금은 애국과 의무, 나와 우리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이 더 크게 보였죠. 그래서 사실은 좀 더 모호한 제목을 생각하면서 며칠 전에 전시제목을 그냥 <중간인>으로 정하게 되었어요.. 

<중간인>에서 육군, 해군, 공군 등 여러 종류의 군인들을 동시에 다루려 했던데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사계절의 군인들 모습을 다 찍고 싶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 궁금했어요. 

내가 처음 군인 작업을 시작할 때, 국방부 측에서 어떤 소재를 원하는지 작업 요청서를 내라고 한 적이 있어요. 난 일단 육, 해, 공을 다 찍고 싶고 그 안에서‘군인과 무기’, ‘군인과 몸’, ‘군인과 동물’, ‘군인과 식물’이란 주제를 가지고 진행했으면 했죠. 그냥 단순하게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군의 범위를 담고 싶었어요. 하지만 사계절을 다 담으려고 한 건, 순전히 시각적인 이유에서였어요. 왜 어떤 감독들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뜬금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고 하잖아요. 예를 들어,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은 ‘성난 황소Raging Bull’라는 복서 영화를 만들면서 로프에 맺혀 핏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장면이 처음 떠올랐대요. 나도 그랬어요. 항상 어떤 인물군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모습이 있어요. 아줌마는 눈썹 문신에 빨간 립스틱을 하고 대차게 웃는 아줌마, 여고생은 짧은 치마를 입고 물음표 표정을 짓는 소녀. 그런데 군인은 하얀 꽃나무 아래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까맣게 탄 사병이 웃통 벗고 웃는 모습이었어요. 결국 그런 모습은 못 찍었지만, 대신 벚꽃 나무 아래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군견과 함께 서있는 하얀 얼굴의 사병을 찍었죠. 그 사진이 정말 맘에 들었어요. 그러고는 꼭 눈밭에 웃통 벗고 빨갛게 서 있는 군인도 찍어 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찍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사계절을 담겠다는 이유는 완전히 시각적인 발상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눈으로 생각해요. 

그 전에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마스크가 아닌 한국인의 파사드를 보여주는 작업을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이 나요. 마스크는 실체를 가리는게 주 목적이고 파사드는 실체를 이렇게 봐달라고 내미는 얼굴이라고. 그럼 군인들도 그렇게 ‘내미는’ 얼굴로 볼 수 있는 건가요? 

군인들도 ‘내미는’ 얼굴이 있어요. 거의 대부분의 군인들이 내 카메라 앞에 서면 대한민국의 용맹스런 군인의 표정을 내밀었어요. 은연중에 강요 받은 얼굴을 연기하는 거죠. 하지만 이건 표면적인 문제고 군인 작업은 유형이나 파사드의 측면에서 작업하지는 않았어요. 처음부터 고립감이나 격리감, 혹은 트라우마나 강박감 같은 것들을 의도했던 것 같아요. 

 

 

                                                                    중간적인 불안

 

 

우리 사회가 큰 불안에서 세세한 불안을 보여주는 사회이고, 작업에서 세세한 불안을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군인들도 그런 불안을 가진 집단이라고 본 거죠? 

맞아요.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의 영화 제목처럼 ‘영혼을 잠식해 갈만큼 거대한 불안’이 아니라 ‘미열 같은 불안’이요. 마치 봄날에 걸린 감기처럼 아주 소소하고 성가시게 괴롭히는 불안을 다루고 싶었어요. 굳이 내 식으로 얘기하면, ‘극단의 불안’이 아니라 ‘중간적인 불안’이에요. 군인들도 그런 소소하고 모호한 ‘중간적인 불안’ 때문에 고립되고 갈등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여기서 내가 함의하는 중간은 ‘자아와 전체의 중간 지점’을 의미해요. ‘나’와 ‘우리’ 사이에 있지요. 한국 사회가 줄기차게 강요하는 ‘우리’ 말이에요. 요즘 병사들도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예전에는 단순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애국, 애족, 반공, 멸공… 이런 것들 때문이었는지, 군에서 어떤 강압적인 통제나 불이익을 받아도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반면에 지금은 옛날보다 인권에 대한 의식도 높아졌고 인터넷이나 TV도 빈번하게 접하다 보니 통제도 약해졌어요. 따라서 “까라면 깐다.”라는 시대에 군을 경험했던 지휘관들과 요즘 젊은 군인들이 느끼는 정서적인 간극은 큰 거 같아요. 여기서 어떤 중간적인 불안이 발생해요. 무언가 갈등은 있는데 서로가 규명을 할 수는 없고 그래서 항시 중도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너무 중도로 가면 모든 일들이 부조리해져요. 사실 지난 2년 동안 군을 작업하면서 마치 거대한 부조리극Absurd Play을 보는 듯 했어요. 부조리극이라는 게 그래요. 샤뮤엘 베게트Samuel Beekett나 까뮈Albert Carmus, 샤르트르Jean Paul Sartre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이해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아귀가 안 맞는다.’ 이런 얘기거든요. 결국은 “삶이라는 게 기존의 연극처럼 기승전결이 있는 게 아닐 뿐더러, 항상 이치에 맞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내가 요즘 군을 부조리하게 봤다는 건, 부도덕하게 봤다는 게 아니에요. ‘나’와 ‘우리’ 사이에 중간 접점을 찾으려고 무리하게 애쓰다 보니 아귀가 안 맞아서 생기는 갈등들을 보았다는 거죠. 

‘미세한 불안’을 사진의 톤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건가요? 90년대의 사진들―<미국인 그들>, <아줌마>, <이태원이야기>―은 톤이 어두웠는데 <소녀연기>부터는 중간톤으로 바뀌었어요. <화장소녀>부터는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었고 이번 <중간인>도 칼라로 작업했는데, 작업의도나 개념을 사진의 톤을 통해 보여주는 건가요?(Page 139, Cosmetic Girls) 

‘중간 불안’, ‘중간자’, ‘중간인’, ‘중간 계층’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 당연히 사진적인 톤도 ‘중간톤’으로 이어지죠. 특히 <소녀연기>작업을 하며 가장 주안을 둔 건 이 ‘중간톤’, 소위 ‘중간 계조’의 미학이에요. 왜냐하면 블랙이나 화이트는 너무 단정적이고 결정적인 톤이거든요. 반면에 회색이 갖고 있는 일상적인 모호함이 소녀들의 정서적인 중간성과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중간 계조는 어려워져요. 이게 굉장히 이중적인 특성이 있거든요. 중간 계조는 정서적으로 굉장히 여리고 감성적인 톤인데 동시에 객관적이고 중성적인 톤이에요. 어린 소녀의 여린 피부 톤을 표현하는데 쓰이다가도 풍경의 인공성이나 객관성을 보여주는데도 쓰일 수 있거든요. 뉴 포토그라픽스New Photographics 처럼… <화장소녀>도 컬러 작업이지만 흑백으로 전환시키면 중간 계조가 주된 톤일 거예요. 캐스팅적인 면에서도 극단적인 화장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은 피했어요. 왜냐하면 어느 시기, 어느 곳에서든지 극단적인 화장을 하고 다니는 애들은 있잖아요? 갸루족들처럼… 주로 ‘중간적’인 톤으로 화장을 하고, 중간적인 욕망으로 무리 지어진 애들을 골랐죠. 군인 작업도 마찬가지에요. 극단적인 조명이나 캐스팅, 혹은 상황은 피했어요. 난 군을 지나치게 부정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지도 않았지만… 

작업에서 보이는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죠. 작업에서 배경이 드러날 때와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어요. <미국인, 그들>에서는 배경이 확실이 드러나고, <아줌마>에서도 배경이 어둡게 보이는데 <소녀연기>에서부터 배경이 미니멀해져요. 배경이 강의 풍경이나 하늘로 대치되었어요. 군인을 찍은 <중간인>에서는 나무, 장갑차, 비행기 등 배경의 요소가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어요. <중간인>은 인물뿐 아니라 환경의 맥락을 반영한 작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었는데, 인물이라는 대상과 배경으로서의 환경을 어떻게 선택했는지 알고 싶어요. 

이전 작업-<아줌마>, <소녀연기>, <화장소녀>-에선 배경이 그야말로 백 그라운드였었어요. 이야기는 없고 정서적인 무드만 자아내는 배경막 같은 역할이었죠. 하지만 군인 작업에서 배경은 모티브고 의도적인 병치Juxtaposition예요. 문맥Context으로써 내가 군인들의 고립감과 격리감을 표현하는 중요한 미쟝 씬Mise en Scene의 역할이죠. <중간인>작업 중에 내가 좋아하는 ‘Plate no 14.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해군’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검은 해군복을 입은 한 사병이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이미지인데 뒤쪽으로 보면 초점이 나가서 무슨 망가진 사다리처럼 보이는 군 구조물이 보여요. 사실은 높이가 몇 십 미터나 되고 근접 촬영이 안 될 만큼 보안 규정이 적용되는 중요한 장비인데, 내 사진에서는 장난감처럼 보여요. 어쩜 그게 내가 군을 바라보는 관점인지도 몰라요. 그야말로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요.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이 인물 안에서 배경과 인물의 관계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아줌마>의 경우 인물의 표정이나 디테일 등이 많이 드러났다면 그 다음부터는 그런 드러남이 완화되었죠. 

‘드러남’이 아니라 ‘드러냄’이죠. 플레쉬를 이용하는 내 사진은 일상을 과장하는 면이 있어요. 어쨌든 <아줌마>작업이 훨씬 더 네가티브negative해요. 하지만<소녀연기>때부터는 뉴트럴neutral하게 가려고 했어요. 그게 실제로 뉴트럴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진적으로는 뉴트럴neutral하게 하려고 했던 건 사실이에요. 군인도 내 딴에는 중립적으로 했어요. 

‘뉴트럴’이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인물군을 담는다는 의미도 포함되나요? 

그건 아니에요. 자연발생적인 것을 ‘내츄럴natural’이라 한다면, ‘뉴트럴neutral’은 인위적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중립이나 중도라는게, 어쩌면 가장 주관적인 것일 수도 있잖아요? 중도적인 지점을 어떻게 정해요? 요즘의 국내 정치 상황에 빗대어 얘기하면, 옛날처럼 여야가 단순하게 분리되었다면 나는 ‘중도’를 쉽게 택하겠지만, 지금은 중도보수, 중도좌파, 중도좌익 성향을 가진 우익보수 뭐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잖아요. 그만큼 사회에 그레이 에리어Gray Area가 많이 늘어났다는 얘기겠지요. 그러니 그 중도 지점을 어떻게 정하겠어요. 예를 들어서 옛날에는 중용이 가장 큰 미덕이라고 했지만, 그건 사회가 그만큼 단순했으니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중용이 어디인지 어떻게 알아요. 모르죠, 도저히. 

그럼 군인 작업의 중립성에 대해서 설명을 좀 더 해주세요. 

<중간인> 이전의 작업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타자성이 강한 그룹들이었어요. 어쩌면 완벽한 ‘그들’이었죠. 하지만 군인 작업은 내가 경험한 군대 생활의 선입관도 있고, 또 그들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기성 세대의 시각에 내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객관적이기 힘들었다고 봐요. 하지만 사진적인 접근 방법들은 이전 작업들에 비해 중도적이려고 노력했어요. 

지금까지 찍은 군인 작업 사진들을 가지고 전시나 도록을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서 다양한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하셨죠. 

또 시기적으로도 인물에서 초상으로 넘어 왔다가 다시 인물로 돌아와 작업했고, 미학적으로도 유형학적인 연출 사진이나 ‘의사擬似-다큐멘터리’ 등등 많은 생각들이 겹쳐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작업을 해놓고 보니 여러 갈래 길이 보이더라고요. 더구나 여성과 남성이 군인 작업을 보는 시각이 판이하게 달랐어요. 나는 작업을 발표할 때마다 모니터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 경우처럼 반응이 차이가 많은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여성들은 대부분 생소한 무기나 군복들을 보면서 마치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 보듯이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죠. 더욱더 흥미로운 건, 여성들이 별로 군 상황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죠. 반면에 남자들은 푼크툼Punctum적 이었어요. 대부분 자신이 겪었던, 군 경험과 대비시켜서 개인적인 통로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죠. 사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에서 만들어진 기억이나 선입관, 혹은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그러니 주관적인 감상이 무리는 아닐 거라고 봐요.

<광주이야기>는 <꽃잎>이라는 영화의 포스터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영화 속의 광주항쟁 장면 촬영 현장에서 만들어진 거죠. <광주이야기>를 볼 때도 느꼈는데, <중간인>도 작품을 보면서 처음에는 실제 상황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자세히 보면 비실제적인 어떤 다른 요소들이 함께 보여요. 서로 연관이 있나요?(Page 139, Gwangju Story)  

<꽃잎>의 포스터 작업을 할 때, 영화 연출팀에서 앞으로 3일 동안 가장 대규모의 군중 시위 장면을 찍으니 관심 있으면 현장에 오라고 해서 광주에 내려가게 됐어요. 그래서 한 2,000명 정도의 광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영화의 시위대로 나오는 군중장면 한 가운데서 마치 다큐멘터리 사진가처럼 촬영을 했어요. 그런데 여기저기서 심각하게 연기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됐죠. 당시에 나는 스피드 그래픽이라는 대형 카메라에 커다란 플레쉬를 장착하고 촬영을 했는데, 사람들은 내가 영화 카메라로 찍는 줄 안 거죠. 그래서 휴식 시간에 자기들끼리 느슨하게 놀고 있다가도 내가 카메라만 들이대면 심각하게 시위대 연기를 하는 거에요. 내가 요구한 것도 아닌데… 그때 든 생각이 내가 아무리 눈앞에 있는 사실을 찍어도 그건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는 허구인데, 영화 현장을 찍는 건 사실이고, 또 찍힌 대상이 연기를 하는 건 허구인데, 그 모습을 담는 건 사실이잖아요. 영화적인 허구와 사진적인 진실이 나선처럼 얽히는 거죠. 이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그때부터 다큐멘터리의 연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어요. 다큐멘터리 구도의 선입관이나 전형성을 이용하면 흥미로운 연출 사진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금 하고 있는 군인 작업에도 일정 부분 ‘의사擬似-다큐멘터리’적인 측면이 있는데, 그 발상은 <광주이야기>때부터 시작된 걸 거에요. 

구체적으로 <중간인>의 ‘의사擬似-다큐멘터리’적 측면은 어떤 것인가요? 

기본적으로 초상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현재 군의 모습을 기록했기 때문에 연출의 측면이 배제될 수는 없지요. 물론 즉흥적으로 찍어내는 초상 작업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초상 작업은 사진작가가 대상을 관찰하고 연구한 뒤, 구상된 기본 미쟝 씬부터 시작되니까요. 저도 역시 마찬가지에요. 국방부에서 촬영을 허락한 부대에 도착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일단 사병들의 일상을 눈여겨봤어요. 그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와 훈련하는 갖가지 동작들 그리고 표정이나 자세부터 눈짓, 손짓, 발짓까지…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우두커니 서있는 자세부터 시작되지만, 한 사병을 한 시간 이상 촬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결정적인 제스처나 혹은 표정이 보일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모델이 일상적으로 하는 소소한 행동이 나한테는 중요한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하사관 훈련소에서 작업했던 한 교관은 모자를 벗어 달라고 했더니 자신이 썼던 빨간 모자를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이 두 손으로 경건하게 받들더라고요. 순간적으로 군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한번 더 그렇게 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찍었죠. 이렇듯 재연을 해서 찍은 장면들도 있었는데 이런 점들이 ‘의사擬似-다큐멘터리적’인 요소들이 되겠죠. 하지만 나는 이런 요소들 때문에 내 작업의 다큐멘트성이 사라진다고 생각은 안 해요. 

마지막으로 ‘중간인’이라는 제목에 중립적이라는 뜻도 있지만 불확실하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앞에서 내가 바라본 군의 모습이 거대한 부조리극을 보는 듯 했다고 했어요. 크게는 남과 북의대치적인 상황도 그렇고 작게는 군내부의 세대적인 갈등도 그렇고… 모든 게 불확실 하다 보니 조리가 안 맞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내가 내 작업을 통해서 조리를 맞추려는 건 아니에요. 어떻게 조리를 맞추자고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사진가가 어떤 문제를 보았을 때, 교도적일 필요도 없고 답을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제시할 뿐이죠. 곰브리치Ernst H.J. Gombrich가 이런 말을 했어요. “예술가는 작업을 하면서 종종 세상의 본질을 봤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세상의 본질이 아니라 세상의 본질을 바라본 자신의 반응의 본질일 뿐이다.” 나는 이 말을 사진가에게 적용시키면 더 할 나위 없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정말 많은 사진가들이 대상의 본질을 봤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자기가 작업하는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 그 본질을 바라봤던 자기 자신의 반응의 본질이에요. 아줌마도 아줌마의 본질이 아니에요. 아줌마에 대한 내 반응이 본질일 뿐이지. 소녀도 그렇고, 물론 이번 군인작업도 그래요. 내가 군이 가지고 있는 중간적인 불안을 본 건 아닐 거에요. 그 불안을 바라보고 난 내 반응의 본질을 담은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