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아줌마의 삶“을 비추다.
글. 백지숙
인물사진의 역사는 사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다. 굳이 사적인 연원을 따져보지 않더라도 보통사람들에게 사진은 초상사진 또는 인물을 찍은 사진과 동의어다. 백일사진에서 첫돌사진, 입학 ·졸업 사진, 결혼사진, 신혼여행사진, 그리고 다시 자신의 첫 아이 사진과 환갑사진으로 이어지는 각종 기념사진들이 그렇고, 증명사진과 명함사진, 스냅사진 그리고 스티커사진까지 시간의 단면을 가르는 사진들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사진은 크고 작은 개인사의 기록이자 기억의 재생이며 일정한 주술이고, 또 상당 부분은 미래를 향한 투자를 뜻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진의 능력은 사실상 해당 인물의 ‘정체‘를 구성하는 문제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가령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레플리칸트나 <터미네이터1>의 전사 또는 <바톤 핑크>의 시나리오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마지막 증거로 사진 한 장, 고작해야 종이와 몇 가지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가볍고 보잘 것 없는 그것에 매달린다. 그런가 하면 요즘 아이들은 수많은 스티커사진을 ‘대량복제‘하여 자기 물건 여기저기에 붙여 놓음으로써 ‘존재증명‘하고자 한다. 극단적인 예들이긴 하지만 흔들리는 정체성의 균형을 잡기 위해 네모난 사진의 힘을 전용하는 사례는 둘러보면 아주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오형근의 ‘아줌마사진‘은 일상적인 인물사진의 프레임에서 가장 멀리까지 물러나 있는 존재를 다룬다. 찬란한 젊음의 시기를 완전히 빠져 나왔고 아직 황혼의 여유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 항상 뒷전에 물러나 있도록 강요받아 온 이 아줌마들은, 현재 가정의 중심 그 자체이면서 막상 가족앨범의 사각지대에 머무르고 있다. 게다가 상황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줌마들은 여전히 비사회적인 인물로 우리 머릿속에 각인 되어 있다. 이러한 아줌마의 비 사회성은 그간 아줌마를 재현‘하는 담론이 부재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아줌마는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며 부르주아도 아니고 프롤레타리아도 아니며 엘리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철저한 주변인도 아니다. 이들은 홈리스들이나 재개발지 역의 주민들이나 서커스단원들이나 하다못해 북한의 기아 어린이만큼도 카메라의 조명을 전면으로 받은 적이 없다. 고작해야 아줌마들은 춤바람이나 묻지마 관광이나 고스톱도박 등의 소소한 사건들에 연루되어 ‘쓰레빠‘와 파마머리와 퉁퉁한 허리 살에 관한 사회적 기억을 몽타주하고 있을 뿐이다. 신문 사회면 사진의 부분 재현은 가족앨범의 일상적 부재와 맞물려 아줌마의 정체에 관한 상당히 악의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오형근의 아줌마 사진은 그 자체로 문화적 ‘발굴‘의 의미를 지닌다.
그의 사진에서 아줌마들은 그 동안 ‘모자이크로 가려져 있던‘ 얼굴을 강한 조명 앞에 드러낸다. 비로소 심미의 대상으로 부각된 이 한국의 아줌마들은 우리 앞에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자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소간의 미래까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1m가 넘는 크기로 프린트된 원화에서 그녀들의 들떠 있는 화장과 어디선가 반짝 빛나고 있는 액세서리들과 특히 목 부분의 두드러진 주름과 그리고 재킷의 보푸라기들을 눈으로 직접 ‘만지면서‘ 우리는 이들의 근심과 자부심과 환상과 쾌락까지를 샅샅이 훑어내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자아에 대한 관념이 두드러진 여느 인물사진들의 주인공들과 달리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거의 무방비 상태로 자신의 전인격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당 정체성의 부재에 시달릴 것이라 추정되었던 이들이 오히려 그 관념 자체를 무화 시키고 있는 상황의 역설 – 아줌마들은 뒤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을 적절하게 선택된 사진 제목과 같이 읽어낼 경우 인물의 사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진의 인물로, 그러니까 맡은 배역에 따라 선발된 배우들의 스틸처럼 보인다. 물론 이들은 잘 나가는 배우들이 아니라 연기와 실제를 가르기 힘든 ‘경찰청사람들‘이나 여러 재연프로에 등장하는 무명의 ‘주연‘ 배우들로서 우리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이들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줌마에 관한 또 다른 정신분석학을 요구한다.
글쓴이 백지숙은 문화평론가다. 우리사회의 시각 이미지와 대중문화에 관한 비평서<이미지에게 말 걸기>,<짬뽕>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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