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또는 초상 사진에 있어서 오형근은 한국 예술계의 자존심이다. 전통적으로 인물을 다루는 예술 사진 분야의 척박함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진적 표현 요소들을 찾아내어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일관성 있게 적용시킴으로써 우리 시대의 인물에 대한 새로운 이야깃거리와 논의를 촉발시켜왔다. 오늘, 사진가 오형근과의 만남은 예술계의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익명적 ‘아줌마’와 ‘여고생’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업들을 한쪽으로 밀쳐두고, 그가 대중적인 소통의 주역으로서 만들어온 영화 포스터 사진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사실 그가 사진가로서 지금까지 해온 모든 작업은 영화와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비록 작가 스스로가 예술과 완전히 구분지어 생각하는 상업적 작업이라 할지라고 영화화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작업을 한 몫에 만나본다는 점만으로도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사진가 오형근이 10년 넘게 촬영해온 30여 편의 영화 포스터 사진을 앞에 두고 그의 작업을 좀 더 큰 눈으로 조망할 수 있는 숨겨진 다른 한 축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까이, 더 가까이

지금까지 오랫동안 영화 포스터 작업을 하셨지만 이렇게 한데 모아서 보여주시긴 처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번에 보니 놀랄 정도로 많은 작업을 하셨고,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된 히트작도 지면이 아쉬울 정도로 많은데요, 영화 포스터라는 게 예술 작업처럼 혼자 하는 일일 아니니 제작 여건의 변화에도 민감하실 것 같습니다. 그 얘기부터 좀 해주시지요.

내가 처음 포스터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1993년 당시 여균동 감독과 함께 일하던 정윤수 조감독의 권유였습니다. 영화 연출은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니 포스터 작업을 통해서 현장 분위기를 익히고 나중에 감독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한 거죠. 그때만 해도 영화 포스터 사진을 통해서 전문적인 작가의 시선을 드러낸다는 건 거의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물론 나는 상업적인 일을 하면서 사진가가 지나치게 예술적인 자존심을 내세우는 건 좋지 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웬만하면 맞추려고 하는 편인데 처음엔 정말 카메라를 내던지고 오고 싶은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아마도 <접속>(1997)이라는 영화 때부터였을 거예요. 포스터의 중요성을 높이 사는 제작자를 만나서 의기투합이 되었죠. 사실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혼자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졸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선 요구하고 설득할 수밖에 없었죠. 포스터 촬영을 위해 주연 배우들이 꼭 하루를 내주고, 영화 조명도 쓸 수 있게 해주고, 살수차에 발전차에, 포스터만을 위해 따로 세트를 제작하고 뭐 이런 것들이 물론 지금은 당연한 요소가 되었지만 사실 한 가지도 그냥 얻어진 것은 없어요. 어쩌면 내가 포스터 사진을 영화라고 하는 큰 작업의 테두리 안에서 독립된 기능을 지닌 하나의 영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일 거예요.
사실 그렇게 많은 영화 포스터를 찍은 건 아닌데 그 중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많아서 오랫동안 극장에 걸려 있으니까 사람들이 기억을 잘 하는 것 같아요. 영화 시장이 많이 커졌고 대규모의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들여서 만드는 영화가 늘면서 요즘은 예산 면에서 보면 속칭 블락 버스터급 포스터를 찍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영원한 제국>(1995)를 작업하면서 조수 한 명과 내가 배경에 사용할 옥괘 무늬를 꼬박 이틀 동안 직접 그리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스캔들>(2003)의 포스터에 사용한 세트와 의상은 나의 의도대로 수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서 전문 미술팀이 별도로 제작해 준 것입니다. 이제는 포스터도 시나리오에 따라서 대규모의 엑스트라를 동원하거나 세트를 짓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 해 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다고 해서 항상 내 마음에 쏙 드는 포스터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투자를 많이 하면 그만큼 사공이 많아지거든요. 공들여 찍어 놓아도 실제로 사진을 선택하는 의사 결정권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정작 포스터에는 엉뚱한 사진이 나가서 나를 실망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그런 변화는 포스터를 통한 대중적 소통의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한 제작진과 사진가 공동의 노력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예술 작품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시각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십시오.

영화 포스터가 재미있는 건 모든 사람들의 비평의 대상이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영화 포스터 안에는 한 학기를 강의해도 될 만큼 많은 심리적인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어요. 그야말로 관객들을 포섭하기 위한 사진심리학 한 과목이 그 안에 함축되어 있는 거지요. 비만과 다이어트를 주제로 한 <코르셋>(1996)이란 영화의 제목이 ‘콜셑’도 아니고 ‘코르셑’도 아니고 ‘콜셋’도 아닌 ‘코르셋’이 된 경우나 시대극인 <스캔들>(2003)이 ‘스캔달’이 아니고 ‘스캔들’이 딘 건 단순한 타이틀의 타이포그래피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학적이고 사회적인 뉘앙스의 해석을 다졌다는 거예요.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요즘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가 참 많은데. 현실에서도 그렇고요. <해피엔드>(1999)의 포스터에서는 불륜을 저지르는 여주인공의 얼굴이 근심과 불안감이 가득 차 있어요. 반면에 <주홍글씨>(2004)의 포스터에서는 똑같이 불륜을 저지르는데도 주인공들의 포정이 당당하고 도발적이에요. 불과 5년 사이에 불륜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과 태도가 달라진 거고 때문에 포스터의 비주얼이 그런 점을 반영한 거라고 봐요. 세부적으로 이런 작업은 그 포스터를 보는 사람들이 누구냐, 그러니까 어디에 이 포스터를 뿌릴 너냐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무슨 말로 상대를 설득할 것인가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아우라 살리기 혹은 죽이기

예술 사진 작업과 구분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작업하신 포스터 사진에서도 당연히 일관된 스타일이 발견됩니다. 특히 채도가 높고 명도는 낮은 강렬한 색이 눈에 띄는데. 선호하는 영화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저는 무거운 걸 좋아합니다. 코미디 영화도 찍고 싶지만 웃길 줄을 몰라요. 내가 무게 잡고 있으면서 배우들에게 ‘자! 이제 웃겨보세요“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재미있는 건, 제 개인 작업은 다 흑백인데 영화 작업에선 거의 컬러만 쓴다는 거예요. 대중적으로 컬러가 dfl한 점이 많으니까 쓰기도 하지만, 한참 하다 보니 내가 영화 포스터에서 색을 쓰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철저하게 절제된 흑백 작업에서 풀지 못한 욕구를 해소시킨다고나 할까요. 어쩌면 내 작업 전제의 균형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지요. 여하튼 그 이유가 무엇이 됐건 색을 선택하는 일은 촬영할 때는 물론이고 편집,보정,인쇄 모든 과정에서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한번은 좀 가볍다 싶은 포스터 작업을 진행하다가 이러다 너무 가볍게 나오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내가 찍었는데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다들 제가 무거운 분위기를 낸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정작 저는 영화 일을 할 때, 인생이 참 생산적이고 경쾌하단 느낌을 받곤 한답니다.

개인 작업과의 균형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개인 작업에서와 유사하게 영화 포스터 사진에서도 인물이 카메라와 정면으로 맞서도 있고 그 얼굴이 딱히 어떤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인물의 정면이 밋밋하고 정적인 느낌을 줄 것 같지만, 사진을 들여다보면 찍힌 사람들이 나와 맞서는 느낌이 들면서 오히려 역동성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물리적으로 보면 옆얼굴이 정면보다 운동성이 있을 것 같지만 심리적으로 보면 정면이 훨씬 더 강렬해요. 일방적으로 보는 증명사진은 단순한 정보를 주는데 그치지만 잘 찍은 인물 사진을 보면 끊임없이 그 사진을 보는 사람과 상호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웃거나 화내는 것 같은 명백한 표정은 안 좋아해요. 너무 단정적이어서 상호반응이 멈추거든요. 좀 더 얘기하자면 무표정하다기보다는 정지된 듯한 표정이 맞을 거예요. 하지만 촬영 시 저는 배우들에게 끊임없이 감정을 멈추지 말라고 요구 합니다. 내가 찍는 순간에도 감정을 전진시키라고요.
인물 사진도 결국은 ‘거울과 창’이에요. 보이거나 해석하거나, 대부분은 반응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개인 작업이 강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을 작업으로 표현 요소 속에 맞추어 넣는 것이라면, 영화 포스터의 사진은 반대로 영화 속 등장인물의 성격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배우의 얼굴에 내 표현 요소들을 입히는 작업입니다. 굳이 나누어 얘기하자면 전자는 인물의 아우라를 죽이는 것이고, 후자는 아우라를 살리는 일이 되겠지요. 그것을 통해서 서로 다른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소통의 내용이 다를 뿐 사진 속 인물이 감상자에게 말을 걸게 만드는 표정과 정면성은 공통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삶처럼, 삶은 영화처럼

지금까지 해오신 모든 작업이 영화와 관련된 모티브나 특정 영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뒷이야기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그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도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지나고 보니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 ‘광주이야기’는 <꽃잎>(1996)을 찍다가 떠오른 아이디어고, ‘아줌마’도 <테러리스트>(1995)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찍다가 우연히 아줌마 보조 연기자를 만나면서 굳혀졌고, ‘소녀연기’ 역시 박기형 감독과 <여고괴담>(1998)의 배우 오디션을 함께 하다가 수많은 소녀 연기자를 만나보고 얻은 아이디어에요.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나의 첫 다큐멘터리 사진도 영화와 관련이 있네요. 1989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영어가 좀 늘고 미국 생활도 좀 익숙해지니까 미국인들이 좀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얘들이 모든 걸 다 영화처럼 하고 있구나, 옷도 자기가 닮고 싶은 배우처럼 입고 농담도 그 배우처럼 하고 먹고 자는 것도 은연중에 배우처럼 한다는 거죠. 영화나 TV에 나오는 배우들이 정확하게 자기의 롤 모델이에요. 말하자면 연기 교과서인 샘이죠. 심지어 그 사회의 주류 문화에서 떨어져 나온 아웃사이더들조차 주류 영화의 아웃사이더들 같이 옷을 입고 다니고 행동을 해요. 뉴욕에 가면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 나오는 트라비스 비클과 똑같아 보이는 아웃사이더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데요. 저의 첫 다큐멘터리 작품이였던 ‘미국인 그들’은 거리에서 영화배우들을 흉내 내고 다니는 그런 일반인들을 찍은 거였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인데 그때부터 벌써 미국은 그야말로 거대한 영화적 시뮬라르크였던 거죠. 쟝 보드리야르가 맞는 거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이제는 미디어와 완전히 섞여 현실이 영화인지, 영화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거죠, 내 사진은 그런 현실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사람 사는 이야기인 영화와 그 주인공들의 얼굴이 담긴 인물 사진에 몰두해오셨는데 사람의 얼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특별한 이해가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가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오히려 포스터에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조금은 유치하고 가벼운 면이 있는 모습 말이지요. 사실은 나도 사람들 많이 찍으면 찍을수록 인물에 대한 이해가 커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요. 곰브리치의 말처럼 예술가가 예술 작업을 통해서 보여주는 건 세상의 본질이 아니라 세상의 본질을 바라본 그의 반응의 본질일 거예요. 사진을 찍는 다는 것도 그 대상의 본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본 사진가의 반응의 본질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배병우 선생님이 25년간 소나무를 찍었다고 해서 배 선생님의 사진이 소나무의 본질을 담고 있는 건 아니죠. 거기에는 소나무의 본질을 바라본 배병우 선생의 반응의 본질이 담겨있는 겁니다. 내가 아줌마를 찍었으면 그것은 아줌마에 대한 내 반응의 본질이지 아줌마의 본질은 아니란 거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게 아줌마의 본질에 대해서 물어요. 난 아줌마의 본질은 몰라요. 다만 아줌마에 대한 내 반응의 본질은 잘 알죠.
대략 20년 정도 사람을 찍어왔는데, 아이러니컬하레도 요즘은 사람 얼굴이 점점 조형적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사람의 얼굴을 조형으로 보는 게 어리석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감성이 배제되고 미니멀한 인물 사진을 찍고 싶어요, 아주 드라이하고 중립적인 얼굴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힘이 있다고 느껴지는 배우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특별한 아픔이나 고통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감성을 담는 것도 재미있어요. 그때마다 얼굴은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지 연기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오형근의 영화 포스터 사진은 대중과의 소통 거리를 조절하고 사진의 시각적 표현성을 실험하며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즐거운 장이다. 그리하여 외딴 곳에서 벌어지는 듯한 예술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고집스럽고 은밀하게 지키는 규칙들을 과감하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넘어서며, 소수에게 집중했던 관심을 모두에게 풀어헤쳐 나누어 주는 일이다. 그는 영화 속에 담ㅅ긴 복잡하고 구구한 사람 사는 사연들을 명료하고 순수한 형태로 정제해 낸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그가 지닌 화두와 그대로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그는 자신의 사진 속에 담긴 얼굴로 오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의 얼굴들은 모두 ‘조형적적으로 읽혀지는 감성’을 담고 있다. 개개의 얼굴을 사진에 옮기면서 그가 취한 밝기, 형태, 색 등은 정교하게 계산되어 특정한 감성을 유발시키기 위한 장치들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이전엔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나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감성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음 사진이 등장했던 19세기에 움직임을 담은 사진이 시간성을 재구성하였고, 그 다음 세기엔 세밀한 입자와 극명한 심도가 우리 시야의 공간을 분화시켰던 것처럼 우리시대의 사진은 이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여 변주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가 오형근에 의해서 섬세하게 조율된 얼굴들은 바로 이렇게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우리의 감성적 마음을 둗려 깨우고 있는 것이다.

– ‘Myth in The mirror’,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