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읽다 :
‘왼쪽’이라는 중의성과 ‘얼굴’의 대칭성

김소희_Curator’s Atelier디렉터

 

20여 년간 한국사회의 특정한 유형을 인물사진으로 작업해왔던 오형근의 개인전 <왼쪽 얼굴>(2022.1 2.8.-2023.1.29, 아트선재센터)이 열렸다. 본전시는 아트선재센터의 3층 전시장에 21점의 사진으로 구 성하였는데 <아트선재파일:오형근>이라는 제목으로 프로젝트 스페이스(1층)에 <아줌마>연작 중 6점을 추가 설치한 것은 예전에 이곳에서 전시했던 작품을 최근작과 같이 보여줌으로써 작가의 과거와 현재 를 함께 조명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한다.

모처럼의 이번 <왼쪽 얼굴>전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선 전시제목에서의 변화 때문이다. <아줌 마>(아트선재센터, 1999), <소녀연기 Girl’s Act>(일민미술관, 2003), <소녀들의 화장법 Cosmetic Gi rls>(국제갤러리, 2008), <중간인 Middleman>(아트선재센터, 2012) 등의 전시는 ‘아줌마’, ‘소녀’, ‘여 고생’, ‘군인’ 등 오형근 스스로가 경계의 ‘중간인’이라고 호명했던 인물 유형을 직접 전시 제목으로 사 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의 제목인 ‘왼쪽 얼굴’은 그 유형이 가지는 범주에 인물을 가두지 않으 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2006년 경 <불안 초상 Portraying Anxiety>연작을 시작하면서 약 4년 동안 이태원 일대 거리에서 캐스팅한 청년 200여 명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것이 바탕이 되었으며 ‘얼굴’을 제목에 전격 드러낸 것이다.

‘왼쪽 얼굴’이라는 표현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먼저 “오른쪽을 바른쪽이라 하면서 왼쪽은 열등 한 것으로 보는 즉, 왼쪽 얼굴은 말하자면 외진 얼굴, 경계 진 얼굴”이라는 우리 사회의 통념에 반기 를 드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그가 이제까지 찍은 작품 중에 왼쪽 면이 더 드러난 얼굴이 많은 것도 또 다른 동기가 되었다.

왼쪽은 오른쪽의 반대편으로써 ‘왼쪽(left)’이기도 하지만 남겨진 흔적으로서 ‘left(leave)’를 뜻하기도 한다. 육안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해상도와 깊은 심도로 이루어진 세부 표현은 언어로 옮기기에 쉽지 않은 기호와 자국을 사진의 표면에 남긴다. 그것이 우리가 해석하고 읽어야할 한 얼굴의 히스토리이자 한 인물이 가진 스토리일 것이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다. 얼굴은 결코 거짓 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한 발자크(Honor de Balzac, 1799-1850)의 표현을 상기해보자. 그의 말에 동의한다면 얼굴의 외형은 직업 유형과 개인이 처했던 상황과 사회적인 여건에 따라 그려지는 삶의 지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의 새로움은 인물 사진과 누드 사진(전신 누드와 신체 일부분을 클로즈업하듯이 화면을 구성한 사진) 을 함께 배치한 작품 설치의 변화에서 온다. 예컨대 전시장 한 벽면에 정면 얼굴(로즈, 20170810)과 왼쪽 얼굴(유호, 10261208) 사진 사이에 얼굴은 없고 벌거벗은 상반신의 사진(토르소, 소년, 2016062 9) 세 점은 각기 다른 시선의 방향을 보여주며 작품 사이 비일정한 간격을 두면서도 묘한 균형을 이 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디스플레이였다. 특히 중간에 위치한 ‘토르소, 소년, 20160629’의 몸에 서 마치 오른쪽 얼굴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면 과장일까. 소년의 오른쪽 가슴은 화면의 구도 상 평평해 보이지만 왼쪽 가슴은 볼록하게 솟은 모양을 노출시킨다. 완전히 납작하던 사진의 표면을 입체적으로 튀어 오르게 하는 이 카메라의 각도는 세련되었다. 이와 유사한 사진이 하나 더 있는데 ‘민영, 201708 16’이다. 어깨선이 살짝 왼쪽으로 기울어지면서 한쪽 유두와 반대쪽 가슴 위에 새겨진 하트 모양의 문 신 역시 입체감뿐만 아니라 시각의 운동성을 유발시키는 요소가 된다.

이와 또 달리 이중성을 가진 설치 방식의 특징도 살펴보도록 하자. 남자/여자, 뒷모습/앞모습, 얼굴/토 르소, 앉다/눕다, 부분/전체로 특정할 수 있는 두 가지 면이 교차하도록 가깝게 설치한 사례들이다. 한 남자의 뒷모습의 상반신(‘수웅’)과 여성의 토르소(‘LFmY#3L’)가 근접하여 있고, 인기 웹드라마 ‘파친 코’의 배우로 출연하기 전 ‘민하’의 다소 평범해 보이는 얼굴과 ‘가로 누운 몸’이 가까이 설치된 것을 보고 있으면 입 밖으로 쏟아내기 어려운 모호함으로 스멀거린다. 아마도 그것은 성적 정체성의 모호함 일 수도 있고 무표정이 주는 애매함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럴수록 관객은 두 사진으로 시선을 옮겨 다 니며 모종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려고 집중할 것이다. 시선의 교차는 딥틱(diptych)으로 제시된 ‘몰괜, 2 0100109’로 이어진다. 두 장의 사진은 똑같은 것처럼 보이나 어딘가 미세하게 달라 관찰자가 부지런 히 비교하게 만든다. 이 딥틱 구성은 오형근이 지금까지 해왔던 유사한 이미지를 반복하여 개별성은 사라지게 하고 유형의 보편성을 남기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왜냐면 필자의 시선에는 두 사 진을 오가며 미세한 차이로 인한 시간성과 유동성(운동성)을 감지하게 되는데 그로 인하여 다른 인물 보다 강한 현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 초상>연작 중의 하나인 이 <왼쪽 얼굴>의 초상은 계층으로 특정하거나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 정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을 주 대상으로 한 작업이다. 전작에서 ‘유형’으로 분류하여 전시하였던 몇 점 의 사진을 다시 가져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진 속 인물의 이름을 <소녀 연기>에서처럼 실명과 나이 를 밝히거나 작가가 대상에게서 받은 인상 혹은 인물의 특이점으로 이름 붙인 <아줌마>에서의 ‘슬픈 눈을 가진 아줌마’나 ‘진주목걸이를 한 아줌마’와 달리 ‘로즈’, ‘티파니’, ‘몰괜’ 등 온라인상의 닉네임으 로 표기한 것이 이번 전시의 또 새로운 점이다. 가상의 공간에서 예명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에서 그(녀)의 정체성을 가늠하기 쉽 지 않듯이 다소 평범하거나, 너무 생소한 예명으로 그들의 면목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오형근은 각각 인물의 이미지로 한무리을 이루면 즉, 유사한 이미지나 유형을 반복하면 개별적인 의미 는 휘발되어 추상화되는 속성을 주목해왔다. 특히 <아줌마>연작을 통해 아줌마 개개인의 정체성을 드 러내기보다는 화장과 패션, 표정과 몸짓으로 이루어진 기호를 반복하여 드러냄으로써 ‘아줌마스러움’을 보편화하고자 했다. 그의 카메라 앞에 선 그녀들은 ‘아줌마스러움’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인상과 몸을 가진 인물로 오형근이라는 ‘사진가의 눈’에 의해 캐스팅된 중년 여성들이었다.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비슷한 무게감의 표정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캐스팅의 결정에서 출발한다. 한 낮의 거리에서 사용한 스트로보의 강한 정면광이 번들거리는 짙은 화장과 반짝거리는 (모조) 액세서리, 헤어 스타일, 의상에 반사되어 ‘아줌마스러움’이라는 전형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구성된 각각의 얼굴은 무엇보다 그가 독창적으로 사용한 조명 기술에 의해 전면 화된다. 대형 포맷의 카메라에 따른 고해상도, 깊은 심도, 클로즈업 그리고 섬세한 조명 연출로 인해 솜털, 모공, 주근깨나 기미, 여드름 자국이나 문신, 들뜬 화장, 컬러 렌즈로 충혈된 눈 등의 디테일은 치밀하게 드러난다. 정면에서 투사하는 첫 번째 조명으로 인해 얼굴은 중간 계조와 파스텔 색감의 배 경지와 함께 평평해지는 것 같지만 두 번째 조명에 의하여 턱선 아래로 옅은 그림자를 만들며 부드러 운 입체감을 얻게 된다. 실물보다 크게 확대되어 실제 인물 앞에서라면 다가갈 수 없는 가까운 거리가 확보된 사진 앞에서 관객은 원하는 만큼 머물며 바라볼 수 있다. 마치 코 앞까지 밀고 들어오는 렌즈 앞에선 모델의 어색함과 긴장감은 그 스스로가 드러내기보다는 작가가 반응하고 ‘카메라의 눈’으로 포 착하려는 욕망에 따라 ‘불안(정)’이라는 심리적 상태로 포착된다. 그 얼굴은 ‘벗은 몸’과 다르지 않은 강렬한 신체 언어를 발하며 개별적 주체가 된다.

포스터로 활용된 ‘지지, 20190628’는 비대칭의 정도가 첫눈에 들어와 전시를 보기도 전에 강한 인상 을 받았었다. 극단적으로 클로즈업 된 그 얼굴은 ‘지지’의 한 부분(detail)이자 관객이 마주한 인화지라 는 공간 안에서 전체(totality)로 기능한다. 클로즈업의 이러한 이중성은 주변 공간으로부터 분리된 얼 굴을 조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근본적으로 좌우 비대칭인 인간의 얼굴에서 ‘왼쪽’ 얼굴은 결국 ‘오른 쪽’ 얼굴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의 시각 능력을 뛰어넘는 카메라의 기계적 시각 능력은 오형근에게 중요한 도 구이다. 얼굴 뿐 아니라 몸짓도 다양한 각도와 측면, 거리로 보여줄 수 있고 원하는 대로 확대, 축소, 분리, 과장할 수 있는 ‘카메라의 눈’은 그래서 비인간적인(때로 폭력적인) 시선을 가진다. 작가에게 있 어 카메라는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이자, 기록(document)이다. 육안으로는 다 지각하기 어려운 얼굴 의 미학을 사진 표면에 가시화하여 남긴 ‘카메라의 눈’으로 본 그의 ‘왼쪽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