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상 기획전 |
사진예술은 2018년 연간 기획으로, 사진 분야에 조회가 깊은 전시기획자의 관점에서 본 장르, 이즘(ism), 주제, 소재 등을 바탕으로 공통점이 있는 작가의 작품을 선정해 소개하는 ‘지상 기획전’ 연재를 게재합니다. 그세 번째 필진으로 김소희 전시기획자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김소희의 지상기획전
시대의 초상
‘소녀’에서 ‘마녀’까지
글 김소희 사진 오형근 , 배찬효
이번 지상 기획전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몸(얼굴)과 성 정체성에 관한 담론이 사진 작업을 통해서 어떻게 재현되고 소통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첫번째로 오형근, 배찬효 두 명의 작가를 선정하였는데, 몇 개의 주제어를 통하여 각 작가의 대표작을 비교·분석하면서 공통분모와 변별성을 추출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방식의 ‘지상 기획전’은 2차원의 지면이라는 제약에 갇히기보다는 두 작품 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하는 새로운 맥락을 설정하고 그로 인하여 작품에 대한 해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각 시대와 문화권마다 몸(신체)에 대한 인식은 다른 양상을 보여 왔다. 예컨대 몸에 대한 미적 기준이 달라지는 것도 인식의 차이와 변화 때문이다. 고대로부터인간의 신체는 예술적 표현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이제 몸은 심리적인 상태와 취향을 드러내는 공간이자 개인의 정체성과 인종, 민족성을 표출하는 복합적이고 문화적인 매개체로자리 잡고 있다.
‘사십대 이후의 얼굴은 삶의 결과물이다’라는 말은 개별적인 삶의 특수성이 사람의 몸 특히 인상에 반영되어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고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얼굴의 외형은 개인이 처한 상황과 직업의 유형, 사회적인 여건에 따라 그려지는 삶의 지도와 같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느 작가보다 수많은 인물과 캐릭터를 자신의 소설속에서 창조했던 프랑스의 문호 발자크(Honor de Balzac, 1799-1850) 역시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다. 얼굴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상이 작가의 세밀한 묘사를 통하여 캐릭터로 드러난다면 초상사진은 인물의 표정과 포즈나 태도 등의 구체적인 기호로 제시된다. ‘얼굴은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는 발자크의 말에 동의한다면 민낯에 화장이나 분장, 변장이나 복장 전도, 타투, 가면을 쓰는 등의 일련의 행위들은 마스커레이드(Masquerade), 즉 진실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혹은 감추려는하나의 전략이 될 것이다.
‘유동하는’ 혹은 ‘가상의’ 정체성의 정체
오형근과 배찬효는 각기 작가가 살고 있는 동시대 한국과 14세기~16세기 그리고 근대 유럽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권을 시대적,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오형근은 ‘아줌마’에서 ‘여고생’, 그리고 ‘소녀’로 사진의 대상을 이동했으며(초기작인 미국인 외에 아저씨와 군인도 대상이 되었으나 이 글에서는 여성 대상으로만 한정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배찬효는 주로 지금-여기에는 현존하지 않는 역사속의 인물이나 실재를 확인하기 어려운 대상(동화 속의 캐릭터, 마녀)들을 연출하여 촬영하였다. 이 대상들은 당대의 사회 구조 안에서 모호한 위상을 가진 계층이나계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는데 그들은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적 구분 중에서 여성(성)의 하위 항목에 해당한다.
‘여성’이라는 성(性)범주 아래 구분되는 호칭인 ‘소녀’와 ‘마녀’라는 하위 구분은 사회와 시대가 특별히 주목하지않았던 대상이었다. 1997년 <아줌마>연작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이라 불렸던 아줌마 담론에 단초를 제공한 바 있는 오형근은 2001년부터 시작한 소녀들의 초상 작업으로 오빠와 삼촌 팬덤 현상을 불러온 ‘소녀시대’라는 열풍과 조우한다. 소녀는 대체로7~12살 나이대의 어린이를 가리키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여자 어린이를포함하여 모든 젊은 미혼 여성을 일컫기도 한다’ 고 정의되어 있는데 다소 광범위하다는것을 알 수 있다. 범위가 넓은 만큼 아이에서 여성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애매한 시기에 있는 소녀의 정체성 또한 모호하다. 소녀의 얼굴은 삶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는 진행형의 초상이며 욕망과 응시의 코드가 달라지면 또 새로운 기호를 연출하는 대상이 된다.
오형근에게 있어 아줌마와 소녀는 자신과는 비동일시적인 타자이자, 관찰의 대상이라면,
배찬효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자로 분류되는 사회적인 약자로서의 여성과 본인을 동일시한다.
ⓒHeinkuhn OH, 진주 목걸이를 한 아줌마, 1997년 2월 25일
ⓒ배찬효, Existing in Costume 22,100x80Cm, C-Print, 2006
배찬효는 유학을 떠난 영국에서 느낀 문화적인 이질감과 편견에 의해 타자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서구라는 외부적인 프레임을 통해 자신이 동양에서 온남성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 무렵 시작된 작업은동양에 대한 유럽의 문화적인 차별과 편견의 시선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서구 백인 남성주의 문화와 계급 구조의욕망을 비판하고자 하는 복장전도와 분장으로 이루어진 역할극이다. 오형근에게 있어 아줌마와 소녀는 자신과는비동일시적인 타자이자, 관찰의 대상이라면, 배찬효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자로 분류되는 사회적인 약자로서의 여성과 본인을 동일시한다. 촬영하는 (남성)주체이자 사진 속의 (여성)타자라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하는 그가 분하는 대상은 대영제국을 통치하던 여왕에서 지체 높은 귀족 부인들, 동화 속의 여주인공들, 영국 역사속의 권력자들 그리고 마녀 까지 이른다.
이중에서 동화 속의 여주인공들과 마녀는 허구적으로 창조된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미녀와 야수, 라푼젤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 프로젝트 Fairy Tale Project>(2008-2010)연작은 서구의 유명한 고전 동화 속에서의 정형화된 성 역할(위험이나 힘든 상황에 처한 여성을 강하고 사회적인 지위가높은 남성이 구원하거나)과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여성의 신분이 남성과의 결혼에 의해 상승한다는 설정)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라면, <마녀 사냥 프로젝트 Witch Hunting Project>(2013~2016)연작은 중세 유럽의지배 권력이 민중 사회를 폭력으로 억압하고 가톨릭의 종교적 질서에 혼란을 초래하는 이단을 통제하는 매커니즘으로 작동했던 ‘마녀 사냥’을 소재로 한다. 전작에서 중세 귀족 부인의 복식을 통해 주류 계층의 신분과 계급을시각화하였다면 이제는 마녀라는 주변적인 대상으로 초점이 옮겨진 것이다. 12세기 말~18세기 초까지 지속된‘마녀 사냥’의 광풍에서 마녀로 고발된 사람들은 대부분 하층민이었거나 신과 남자들의 지배 권력에 대한 불만을표하거나 반항하는 여성들이었다. 그들이 두려움과 배제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배찬효의 여성(마녀)으로의 복장전도는 단순한 성 역할의 전환이 아니라 백인 남성에 의해 주변화된 여성과 서구 문명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자신과의 동일화로 볼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Witch Hunting Project>의 일부 작품은 마녀의초상과 지배층이 합법적으로 마녀를 처벌하기 위해 씌웠던 마녀의 죄목을 이미지화한 작업들이다.
연기자를 지망하는 10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여 정형화된 소녀의 이미지를 포착하고자 했다.
소녀들은 여성스러운 성장의 징후들을 드러내면서 소녀다움을 연기한다.
ⓒHeinkuhn OH, 강소영, 16세, 2003년
본연의 신체성을 다른 성, 인종, 계급의 표상으로 변형하고 자아와 타자, 남성과 여성, 백인과 유색인, 실재와 허구적 존재를 넘나든다.
ⓒ배찬효, Existing in Costume 1, 100x80Cm, C-Print, 2006
오형근, 배찬효가 관심을 가진 대상들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1876-1964)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잔더는 20세기 독일인의 전형을 기록하고자 사회 계급과 직업별로 7개의 섹션 – 1)농민, 2)장인, 3)여성, 4)전문 사회직종, 5)예술가, 6)대도시, 7)최후의 사람들 – 으로 분류하여 촬영하고 <우리 시대의 얼굴 Antlitz der Zeit>(1929)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러한 섹션의 항목은 한눈에 보기에도 직업과 계급에 대한 객관적이고 유형학적인 구분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여성’은 더 의외의 분류이다. 3)여성을 다시 7개의 세부 항목 – ①여자와 남자, ②여자와 어린이, ③가족, ④우아한 여성, ⑤일하는 여성, ⑥가정부, ⑦나치당 여성 – 으로 나눈 것을 보면 당대 독일 여성의 사회적인 계급과 역할에 대한 이해가 다분히 자의적이며 주관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보편적인 구분이라면 상위 범주가 될 ‘남성’이 ①번의 ‘여자와 남자’로 분류된 것이나 ⑦번의 ‘나치당 여성’이라는 범주가 그러하다. 어쩌면 여성이 다른 사람과 맺을 수 있는 다양한 관계성으로 구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별도의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추측하건데 잔더는 ‘나치당 여성’처럼 일반적으로 여성의 유형과는 다른 동시대 독일 여성의 독특한 위상에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형근과 배찬효가 주목하는 여성들도 이처럼 객관적인 범주의 인물들이 아닌 인물 유형이기 때문에 흥미로운지도 모른다. ‘소녀시대’ 의 열풍이 있기 전까지의 소녀도, ‘마녀 사냥’의 광기에 희생된 사람들도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주변화 되었거나 배제해야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애매하고 모호한 정체성의 존재들을 사진으로찍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모델들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의 표현을 빌자면 사진으로 어떤 자국을 남기며 스스로의 존재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일까?
ⓒHeinkuhn OH, 한진희, 17세, 2003년
ⓒ배찬효, Existing in Costume 2, 120x96Cm, C-Print, 2007
화장과 분장의 이면, 불안(정)이라는 징후
이 두 작가가 다루는 초상사진에서 초점은 몸(신체)이 특정 사회와 문화 속의 다양한 기호들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맞춰져 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여성의 신체에 대한 문화적인 강박과 선입견들이 있어 왔다. 한 사회에서 여성 스스로가 인식하게 되는 여성의 몸은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표상이다. 표정과 미소, 걸음걸이나앉음새와 같은 몸짓과 자세를 통하여 ‘귀족다움’이나 ‘여성스러움’ 혹은 ‘소녀다움’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여왕과귀족은 자신의 신분과 계급에 걸맞는 품위와 태도를 갖추어야 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대중 매체의 투사와 남성의 시선에 의해 상품화되고 그에 따라 욕망의 대상으로써의 연출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오형근이 <아줌마>연작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줌마 개개인의 정체성이 아니라 아줌마들의 표정과 몸짓, 화장과 패션으로 이루어지는 기호들을 통하여 드러나는 ‘아줌마스러움’이었다. 그것은 곧 아줌마로 호명하는근거로 작동한다. 또한 이러한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재현하는가가 사진의 관건이 된다. 번들거리는 진한화장과 반짝거리는 액세서리, 헤어스타일, 소품과 의상으로 외형화된 특징은 오형근의 사진적 테크닉에 의해 부각되었다. 대낮의 거리에서 사용한 스트로보의 정면광은 모델의 얼굴과 소품에 반사되어 빛을 발한다.
강한 스트로보 광에 의해 검게 떨어진 배경과 분리되어 도드라지는 아줌마의 정면 상반신은 이제 주변에서 흔히마주칠 수 있는 친숙함이 아니라 낯설고 기이함(uncanny)을 발산한다. 아줌마들은 ‘아줌마스러움’이라는 어떤 전형성보다는 작가가 바라보는 아줌마스러움을 사진적으로 잘 표출할 수 있는 모델들이었다.
이처럼 ‘소녀, 소녀를 연기하다’는 주제로 시작된 소녀들의 초상 작업의 모델들 역시 ‘소녀(성)’를 연기한다. 이 소녀들의 포즈에는 한국 현대 사회의 남성들의 시선이 내면화되어 있다. 이 연작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원형의 사진프레임 역시 이 관음증적인 바라봄을 상징하는 것이다. <소녀연기少女演技>(2001-2004)는 연기자를 지망하는 10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여 정형화된 소녀의 이미지를 포착하고자 했다. 소녀들은 여성스러운 성장의 징후들을드러내면서 소녀다움을 연기한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은 두 손은 얌전히 모아서 무릎 위에 올려놓거나, 양 팔을등 뒤로 보내거나 머리로 올려보는 다소 어색한 포즈를 통하여 카메라라는 시선의 불편함을 견뎌보려고 한다. 작가의 표현대로 모호한 시기에 접어든 여고생들의 정서적인 흔들림을 미세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사진은 <아줌마>연작과는 달리 흑백의 차분한 중간 회색의 톤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화장소녀化粧少女>(2005-2009)의 소녀들은 속눈썹, 짙은 눈 화장과 서클렌즈, 도드라지는 립스틱 색과 들뜬 피부 화장, 염색과 붙임머리 등을 통해 대중문화를 통해 양산되는 연예인의 이미지를 닮고자 한다. 화장을 통한 성인 여성의 어설픈 흉내 내기가 아니더라도 육체적인 성숙함은 작가의 의도된 프레이밍에 의해 시각화된다. 짧은소매의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앉아 허벅지 위로 손을 포개고 있는 사진(Plate no 13. 18세, 2008년 7월 8일)도 그렇고, 교복을 입고 매니큐어 바른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여고생의 몸이 토르소처럼 구성된 사진(Plate no 5. 18세, 2008년 7월 18일)역시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소녀의 성적 징후를 따라 가슴에서 다리 사이까지 흐르게 한다.
그러나 화장과 무표정으로도 감출 수 없는 것은 그들의 현재적 (심리)상태이다.
오형근은 이를 불안이라는 정서로 감지한다. 불안은 오히려 심리 상태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표정을 지운 얼굴의 눈으로, 어디에 어떻게 두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한 위치에 어색한 모양새로 닿는 손에, 카메라의 시선을 정면에서 온 몸으로 뻣뻣이 받아야하는 그 순간에 스친다. 오형근의 사진의 미덕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포획하는 것이다.
소녀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양산되는 연예인의 이미지를 닮고자 한다. 화장을 통한 성인 여성의 어설픈 흉내 내기가 아니더라도육체적인 성숙함은 작가의 의도된 프레이밍에 의해 시각화된다.
ⓒHeinkuhn OH, 18세, 2008년 7월 18일
ⓒHeinkuhn OH, 불안초상 #11_16cg, 2006
ⓒHeinkuhn OH, 18세, 2008년 7월 8일
서구의 유명한 고전 동화 속에서의 정형화된 성 역할(위험이나 힘든 상황에 처한 여성을 강하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남성이 구원하거나)과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여성의 신분이 남성과의 결혼에 의해 상승한다는 설정)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배찬효, Existing in Costum Beauty and the beast, 230x180Cm, C-Print, 2009
ⓒ배찬효, Existing in Costum Rapunzel, 230x180Cm,C-Print, 2009
중세 유럽의 지배 권력이 민중 사회를 폭력으로 억압하고 가톨릭의 종교적 질서에 혼란을 초래하는 이단을 통제하는 매커니즘으로 작동했던 ‘마녀 사냥’을 소재로 한다.
ⓒ배찬효, Existing in Costume – Crime of Contracting with the devil, C-Print, 270x180cm, 2016
ⓒ배찬효, Existing in Costume – Crime of Participating in the devils’ festival, C-Print, 270x180cm, 2016
배찬효의 초기작인 <Existing in Costume>(2006-2007)은 영국에 도착한 이후 몇 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동양에 대한 서구의 편견에 의한 소외감은 유구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나라로 인식되어 온 ‘영국 귀족 되어보기’ 로 발현되었다.
배찬효식의 영국인 되기라는 상상적 동일시는 의외로 여성들이었다. 이 연작에는 잉글랜드가 강력한 대영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던 여군주였던 엘리자베스Ⅰ세와 다양한 신분의 귀족 부인들까지 망라된다. 이작업은 서양의 전통적인 초상화를 참고로 하였는데 인물의 포즈와 안정적인 구도, 강력한 색채 대비와 의상과 소품의 섬세한 디테일의 표현은 사진적으로 번안되어 이후의 작업에서도 지속되는 특징이 된다.
모든 연작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또 다른 사진적 테크닉은 세심하게 연출하고 분장한 틈 사이로 작가의 큼지막한 두 손과 원래의 피부색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분장을 하다가 만 듯한 이 전략으로 인하여 사진 속 모델과 배찬효와의 완전한 동일시는 중단되고 일정한 거리두기가 형성된다. 본연의 신체성을 다른성, 인종, 계급의 표상으로 변형하고 자아와 타자, 남성과 여성, 백인과 유색인, 실재와 허구적 존재를 넘나드는 배찬효의 이 ‘페르소나적인 퍼포먼스(persona performance)’는 사회, 문화적인 편견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자, 모호하고 불안정한 정체성을표출하는 해방의 몸짓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불안은 보다 유명해지고, 중요해지고,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라는 알랭드 보통((Alain de Botton)의 말에 공감할 수 있다면, 현실과 분열된 주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욕망으로 인한 불안(정)은 불가피하게 두 작가의 사진 속 인물의 창백하고 무표정한 얼굴에서, 중립적이라는 사진 톤에서, 동작 그만을 외친 듯 일순간 얼어붙은 듯한 차가운 사진의 표면에서 끈적거리며 스멀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두 작가의 대표작을 오가며 작업간의 새로운 맥락을 설정하고자 했다.
오형근과 배찬효가 각자 주목했던 ‘여성(성)’들, 그리고 그 대상이 어떤 옷을 입고, 화장이나 분장이라는 장치를통해 어떤 가면을 쓰고자 했는지 혹은 자아를 더 드러내고자 했는지를 살펴보았다. 19세기 사회의 여러 유형의 인간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통하여 당대 프랑스 사회 전체를 조망하고자 자신의 소설 90여 편을 엮어 『인간 희극』을 완성하고자 했던 발자크의 야망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는 마치 사회학자처럼 시골과 도시의 삶, 하층민에서 귀족에 이르는 다양한 신분과 계층의 인물들,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과 가족 구도 내의 갈등과 심리적인 측면을 누구보다 치밀하게 관찰하고 꼼꼼히 묘사했던 소설가였다. 오형근,배찬효의 앞으로의 작업의 방향을 정확히알 수는 없지만, 그 행보가 자못 궁금해질 것이다. 우리가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한 시대의 초상을 중단 없이 기록하고, 또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역사 속의 인물(유형)을 지속적으로 현재화하는 이들에게서 21세기형 『인간 희극』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김소희는 홍익대학교 사진디자인학과 졸업,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하우아트갤러리 큐레이터, 고은사진미술관 수석큐레이터로 재직하면서 다수의 사진전을 기획하였으며, <앙리카르티에-브레송> 한국전 큐레이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협력 연구원, 한국보도사진전 디렉터, 2016, 2017서울사진축제 큐레이터를 역임하였다.
글쓰기, 강의, 전시기획을 병행하며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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